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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지도를 보고도 잘 따라온 덕이었다. 평소 같으면 기본으로 두 번은 헤맬 텐데 한 번 만에 무사히 도착했다. 잠깐 쉴 곳을 찾아 근처 호숫가로 왔다. 기분 좋은 바람과 신선한 물 냄새, 자연에서 자라나는 풀들의 냄새가 반겨왔다. 잠깐 나무 아래에 앉기로 했지만, 적당히 따뜻한 햇볕 때문에 눈이 잠깐 감겼다. 휴식을 취하는 사냥꾼을 방해라도 하듯이 조금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으악. 놀라서 절로 목소리가 나왔다. 선잠에서 깨버려서 잠깐 하늘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기지개를 쭉 폈다. 호숫가에서 간도 크게 졸아버린 사냥꾼이, 이번에는 호수 가까이로 가서 물가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은 얼굴을 가볍게 손바닥으로 두드리자, 물가에 비친 앳된 금발의 여자도 함께 손을 움직였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물에 비친 제 얼굴을 보던 여자가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파랗게 맑은 하늘에는 새 두어 마리가 유유히 날아가고 있었다. 음. 아마도 날씨가 너무나도 좋아서 잠깐 앉아서 쉰다는게 그만 졸아버린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맑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어 보기 좋았으나, 조금만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눈이 편안한 짙은 초록과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밝은 회색의 성이 아름다운 풍경을 방해했다. 아니다. 이제 보니 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일단 목적지는 저곳으로 정해뒀기 때문에 좋든 싫든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별거 없는 성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지만, 여자의 직감에는 별것 없는 곳이 아니었다. 이건 사냥꾼의 감이었다. 
 여자는, 그러니까 이 사냥꾼의 감은 무서울 정도로 촉이 좋았다. 흔해빠지게 동물을 마구 잡아대는 사냥꾼이 아니라 뱀파이어를 잡는 사냥꾼이었는데, 성공한 사냥은 이 촉 덕분에 성공한 경우가 많았었다. 물론 실력도 좋아서 따라주는 것도 있었지만. 아무튼, 이번에 이 사냥꾼의 촉은 저 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한번 총을 만지작거릴 때 였다. 

"어라. ...... 이걸 또 들고 왔었나?"

 주머니에서 나온 건지 총에 걸려있었던 건지 웬 열쇠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 이 열쇠는 들고 온 기억이 없었다. 집에 두고 나와도 어느새 주머니나 가방 안에서 늘 발견되었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챙겨 나온 걸 수도 있겠다. 열쇠를 주워 후후, 가볍게 불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가볍고 크기가 작아서 불편하지는 않았다. 작은 의심도 잠시, 다시 사냥꾼은 목적지를 향해 걸어 나갔다. 




 놀랍게도 이 성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있는 거라곤 바람을 타고 들어와 길을 잃어버린 나뭇잎과 나뭇잎. 이상하게 생긴 이름 모를 식물, 이 정도가 끝이었다. 더럽게 넓은 성안을 눈물을 머금고 미로처럼 헤맨 지도 몇 시간 째. 다행스럽게도 깨끗해 보이는 문 앞에 섰다. 여기다. 이건 감이 똥인지 토인지 모를 사람이 봐도 여기엔 뭐가 있다는 게 확신이 섰다. 사냥꾼은 무거워 보이는 문을 두 손으로 열려고 했으나, 두 손을 대자마자 가볍게 열려버려서 조금 당황했다.  
 방 안은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려는 햇빛을 가리려는 듯 두꺼운 커튼이 창문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꾸미다가 말았는지 이상한 천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고 식기도 이상한 곳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관도.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떤 누가 방 안에 장식이랍시고 커다란 관짝을 놓겠는가? 딱 봐도 저기는... 사냥감이 들어 있을거다. 관짝의 머리(?) 부분에 다가가서 주먹을 쥐고 세 번 두드렸다. 꽤 둔탁하게 소리가 울렸다. 관이 무겁거나, 아니면 사람, ...이 아니라 다른 게 들어 있을거다.

"일단 열어봐야 알겠네, 이거... ."

 끙.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사냥꾼이 무거워 보이는 뚜껑을 열었다. 무겁기는 했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안을 봤을 때 눈앞인지 머릿속인지, 어떤 형상이 나타났다. 새빨간 액체가 사람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건 사냥꾼의 것은 아니었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녀서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기...?"
"으아악!"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손에 낮은 온도가 닿았다. 사실 조용한 곳에서 뭔가 툭 튀어나오는 것에 면역이 없어 그대로 소리를 질러버린 것이었지만,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며 애써 놀라지 않은 척을 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왜 그러냐고 말을 하기 전에, 뭔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왠 얼굴도 모르는 남자가, 그것도 이 방 안에서, 정확히는 관짝... 에서 막 일어난 듯 부스스한 머리와 꽤 흐트러진 옷. ...아. 얘구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냥꾼을 쳐다보다가 밀려오는 하품에 입을 살짝 가렸지만,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또 웃으며 사냥꾼의 양손을 꼭 잡았다. 

"찾았다! 내 운명의 파트너!"
"하? 파트너?"
그래, 파트너! 라고 남자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언제 바닥에 떨어졌는지 모를 열쇠를 주워 내밀었다. 

"이게 내 파트너라는 증거, 어....라."

 남자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사냥꾼이 허리춤에 찼던 총을 보고, 사냥꾼의 얼굴을 한 번, 다시 총을 한 번, 다시 얼굴을 한 번 쳐다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머리가 느리게 회전하는 타입인 건지 이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친절한 사냥꾼은 남자를 위해서 먼저 설명을 시작했다.

"야. 너... 뱀파이어지."
"아? 어어... 그렇.....지...?"
"그렇지가 뭐야? 맞아, 아니야?"
"마, 맞아! 맞지! 응, 맞아!"
"그래?"

 곱고 귀엽게 생겼긴 얼굴로 거의 확신에 찬 말투로 물어보고, 똑바로 대답하라는 단호한 어투에 남자는 얼이 빠졌는지 고개만 흔들었다. 그래? 태연한 얼굴로 총을 꺼내려고 했으나, 남자가, 아. 뱀파이어가 더 빨랐다. 서 있던 사냥꾼을 잽싸게 들었다. 들어서 ... 정말, 길게 산 인생은 아니지만, 사냥꾼으로 산 인생이 부끄럽게도 어깨에 걸쳐졌다. 그 와중에 총은 빼버리고 제 옷 안에 숨기면서 사냥꾼을 더 강하게 부여잡았다. 

"너는 사냥꾼이지? 어쩐지 쇠 냄새랑 화약냄새가 좀 나더라."
"야!!!!!!! 안 놔??? 내려놔!!!!!"
"사냥꾼인지 알려주면. 아. 이름도! 이름도 알려주라. 내 이름은 오토야라 하고... 으, 악!"
"놔라했지! 하... 이래도 안 놔?"

 다리로 허벅지를 차고 동시에 목 옆을 팔꿈치로 찍었지만, 소리만 지르며 작게라도 흐트러지는 꼴이 없다. 사냥꾼은 몇 번 더 때리다가 씩씩거리며 마지막으로 어깨를 내 팔꿈치로 내려찍는 걸로 끝을 냈다. 솔직히 이 사냥꾼의 맨손 전투 실력은 영 별로였다. 총이 없었다면 금방 죽었겠지. 남자는 뭐가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면서 방에서 복도로 나갔다. 

"내 파트너랑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있어! 거기로 갈 건데 괜찮지? 음, 어디냐면 ... 성 제일 위에 있는 곳인데, 달빛이 엄청 예쁘거든. 아. 네 머리카락 색이랑 꽤 비슷하네. 밤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는데 그 때까지 있을 거지? 있어 줄 거라고? 정말?!" 

대답은커녕 대꾸도 안 하는데 혼자서 대답하는 게 웃기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이 말 많은 뱀파이어를 처음 봤을 때 쏴버렸어야 했는데. 금발의 사냥꾼, 요루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낮의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지만 요루미의 기분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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